말씀의 배경
고린도는 그리스 남부 아가야 지방의 항구 도시로, 동서 무역이 오가는 길목에 있어 사람과 돈과 문화가 뒤섞인 국제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이곳에 약 1년 반을 머물며 교회를 세웠고, 몇 해 뒤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중 이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풍성하고 열정이 넘쳤지만, 동시에 여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편지 전체를 보면 교인들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갈라져 다투고, 서로를 세상 법정에 고소하며, 누구의 은사가 더 크냐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장과 14장은 바로 그 은사 문제를 다루는 본문입니다. 방언과 예언 같은 눈에 보이는 은사를 자랑하며 서로를 낮추는 분위기 속에서, 바울은 두 장 사이에 13장을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전서 13장은 결혼식에서 낭독되는 아름다운 시이기 전에, 자랑과 시기로 흔들리는 교회를 향한 목회자의 간절한 권면이었습니다. 은사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 은사를 은사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바울은 이 장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본문의 의미
1절부터 3절에서 바울은 방언, 예언, 지식, 믿음, 구제, 순교까지 나열하며 사랑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 비로소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헬라어 원문에서 사랑을 묘사하는 말들이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사실입니다. 사랑은 어떤 느낌이나 성품이기 이전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래 참고"는 사람을 향한 인내를 뜻합니다. 상황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마음입니다. "온유하며"는 단순히 부드러운 태도가 아니라 상대에게 유익을 끼치는 친절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참는 것이 사랑의 소극적인 얼굴이라면, 친절은 사랑의 적극적인 얼굴입니다.
이어지는 세 가지는 부정문입니다.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남이 가진 것을 시기하는 마음과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는 마음은 결국 같은 뿌리, 곧 자기를 중심에 두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바울은 이미 8장 1절에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앓던 병의 이름을 정확히 짚은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이 구절을 읽을 때 우리는 흔히 "사랑" 자리에 나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곤 합니다. 나는 오래 참는가, 나는 온유한가, 나는 시기하지 않는가. 솔직하게 대답해 보면 한 문장도 자신 있게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참지 못하고, 잘 아는 사람일수록 은근히 비교하며, 내가 조금 더 나은 것 같으면 어느새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쓰인 글이 아닙니다. 바울이 먼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래 참으시고, 온유하시고, 우리를 비교하거나 자랑하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이 사랑을 이루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내가 이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붙드는 것이 순서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내가 쥐어짜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맺으시는 열매입니다. 오늘 내 안에서 이 열매가 자라고 있는지 조용히 살펴보는 것, 그것이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할 일입니다.
삶으로의 적용
오늘 하루, 나를 가장 참기 어렵게 만드는 사람 한 명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 답을 서두르지 말고, 한 번만 더 기다려 주는 연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래 참는 사랑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이런 작은 멈춤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남을 시기하거나 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려 보십시오. 에베소서 4장 2절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권합니다. 용납은 상대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는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 교회에서 오늘 한 가지라도 상대에게 유익이 되는 친절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보십시오.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동사입니다. 작은 실천 하나가 이 말씀을 내 삶의 이야기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래 참으시고 온유하신 주님의 사랑을 오늘도 제게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 앞에 서 보니 저는 참지 못하고, 비교하고, 은근히 자랑하며 살아온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제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랑의 열매를 제 안에 맺어 주옵소서. 오늘 제가 만나는 사람들, 특별히 제가 참기 어려워하는 그 사람에게 한 번 더 기다려 주고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시기와 교만이 올라올 때 그것을 숨기지 않고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주님이 저를 사랑하신 그 방식으로 저도 사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 제 말과 행동이 사랑의 동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