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배경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전통적으로 로마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시기, 대략 주후 60년대 초반에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자유를 잃고 앞날을 알 수 없는 처지였지만, 이 짧은 편지에는 "기쁨"이라는 말이 유난히 자주 나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에 있던 로마의 식민 도시로, 바울이 두 번째 전도 여행 중 유럽 땅에 처음 세운 교회가 있던 곳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와 감옥의 간수가 이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교회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바울을 꾸준히 도왔고, 이번에도 에바브로디도 편에 선물을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이 속한 4장 10절부터 20절은 그 선물에 대한 바울의 감사 인사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맙다는 말 사이에 자신이 배운 삶의 비결을 조용히 털어놓습니다. 13절은 그 고백의 절정에 해당합니다.
본문의 의미
이 구절은 흔히 "하면 된다"는 격려의 말처럼 인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바로 앞 구절을 보면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 같은 어떤 형편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 내는 힘을 가리킵니다. 그는 성공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원문에서 이 표현은 지금도 계속 힘을 부어 주시는 분을 뜻합니다. 한 번 받아 두는 능력이 아니라 매 순간 그리스도께 붙어 있을 때 공급되는 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강하다고 하지 않고, 자신을 강하게 하시는 분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11절에서 바울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당시 헬라 철학자들도 자족을 이상으로 삼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외부 환경에서 초연해지려 했습니다. 바울의 자족은 방향이 다릅니다. 자기 안에서 힘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주님은 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형편이 좋을 때 감사하고 나쁠 때 낙심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넉넉할 때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도, 부족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것도 똑같이 배워야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바울이 그 말을 한 자리 때문입니다. 그는 편안한 서재가 아니라 감옥에서, 그것도 자신의 필요를 다른 사람의 도움에 맡겨야 하는 형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능력은 상황이 바뀌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상황 한가운데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오늘 내 형편이 어떠하든, 그 자리에 함께 계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붙들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신 주님이, 그분 안에 있을 때는 모든 형편을 살아 낼 힘을 주십니다.
삶으로의 적용
먼저, 이 구절을 어떤 일에 붙이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시험이나 사업이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에 이 말씀을 쓰기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안에서 주님을 신뢰하겠다는 고백으로 바꾸어 읽어 보세요.
다음으로, 오늘 하루 자족을 배우는 작은 연습을 해 보세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하나를 두고 불평 대신 지금 주어진 것을 세어 보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6절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 교인들처럼 누군가의 괴로움에 참여하는 일도 생각해 봅시다. 바울이 자족을 배웠다고 해서 도움이 필요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 주변에 궁핍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능력 주시는 분을 경험하도록 내가 작은 통로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능력 주시는 하나님, 저는 형편에 따라 마음이 쉽게 오르내리는 사람입니다. 넉넉할 때는 주님을 잊고, 부족할 때는 원망하기 쉬운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바울이 감옥에서 배운 그 비결을 저도 배우게 하시고, 어떤 자리에서든 주님 안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오늘 제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제 힘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게 하시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