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배경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땅에 자리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동쪽과 서쪽에 항구를 하나씩 두고 있어 상인과 선원, 온갖 문화와 종교가 끊임없이 드나들었습니다. 로마의 식민 도시로 재건된 뒤에는 부와 향락으로 이름이 높았고, 그만큼 도덕적으로 어지러운 도시라는 평판도 따라다녔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에 이곳에 들어가 약 1년 6개월을 머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사도행전 18장).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교회를 떠난 뒤 몇 해가 지나 마게도냐 지역에서 보낸 편지로 여겨집니다. 그 사이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그의 외모와 말솜씨, 고난 많은 삶을 흠잡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자신의 사역을 변호하되, 자기를 자랑하는 대신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는 길을 택합니다.
5장은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 몸을 언젠가 헐어질 장막에 비유하고, 그럼에도 담대한 이유를 말한 뒤, 14절부터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풀어갑니다. 17절은 그 논증의 절정이며, 이어지는 화목의 직분에 관한 말씀으로 곧장 이어집니다.
본문의 의미
"그런즉"이라는 첫 말은 앞 구절들을 딛고 서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니 우리도 그와 함께 죽은 것이고, 그래서 이제는 사람을 "육신을 따라", 곧 출신이나 지위나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답이 17절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표현에서 '새롭다'는 말은 단순히 시간상 나중이라는 뜻이 아니라 질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낡은 것을 손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 세상을 지으셨을 때처럼 새로 지으셨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5절에서도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고 하여, 이것이 그의 복음 이해의 중심임을 보여 줍니다.
"보라"는 감탄은 이사야 예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43장 19절에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졌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이 새 창조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난 일임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 말씀은 종종 새해 첫 주일이나 세례식에서 읽히며, 그때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자는 다짐으로 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어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새로워지려고 애쓰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새 피조물이라는 선언입니다. 순서를 바꾸면 이 말씀은 무거운 짐이 되지만, 순서를 지키면 깊은 안식이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옛 습관과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의 현실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다투고 넘어지는 성도들에게 이 말을 썼습니다. 새 피조물이라는 신분은 우리의 상태를 보고 내려진 평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해 주어진 사실입니다. 그 사실 위에서 삶이 조금씩 따라옵니다.
또 하나, 이 새 창조는 나 혼자의 일로 그치지 않습니다. 16절에서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육신을 따라 보지 않게 되었다고 했고, 18절 이후에는 화목의 직분을 말합니다. 내가 새로워졌다면 내가 사람을 보는 눈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나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은 저 사람도 새롭게 하실 수 있다는 기대로 이웃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구절을 삶으로 읽는 길입니다.
삶으로의 적용
먼저 오늘 하루, 스스로에게 붙여 온 낡은 이름표 하나를 내려놓아 보십시오. 실패자, 늘 그런 사람, 바뀌지 않는 사람 같은 이름들입니다. 그 자리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피조물"이라는 하나님의 이름표를 놓고, 로마서 8장 1절 말씀을 천천히 읊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다음으로, 내가 "육신을 따라" 판단해 온 사람 한 명을 떠올려 보십시오. 학력이나 형편, 과거의 잘못으로 이미 결론을 내려 버린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 짧게라도 기도하고, 가능하다면 이번 주 안에 먼저 말을 건네 보십시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은 거창한 사역이 아니라 이런 작은 걸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워짐이 감정으로 느껴지지 않는 날에도 사실을 붙드는 연습을 하십시오. 로마서 6장 4절은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느낌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에 발을 딛고 하루를 걸어가는 것이 새 피조물의 걸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를 그리스도 안에 두시고 새로운 피조물이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스스로를 고치려다 지치고, 옛 모습이 보일 때마다 낙심하곤 했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새 창조가 제 노력이 아니라 아버지께로부터 난 일임을 다시 배웁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고 선언하신 그 말씀을 제 마음 깊은 곳까지 믿게 하옵소서. 저를 묶어 온 낡은 이름표들을 내려놓고, 아버지께서 주신 이름으로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제가 겉모습으로 판단해 온 이웃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시고, 그를 향해 먼저 다가가는 용기를 주옵소서.
저를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 저도 화목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