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배경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채 쓴 편지입니다. 전통적으로 로마의 옥중에서, 주후 60년대 초에 기록되었다고 여겨집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에 있던 로마의 식민 도시로, 퇴역 군인들이 많이 정착해 살던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두 번째 선교 여행 때 이곳에 처음 복음을 전했고,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와 감옥의 간수가 믿게 된 이야기가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특별히 아끼던 공동체였습니다. 바울이 어려울 때마다 물질로 도왔고, 이번에도 에바브로디도 편에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에도 걱정거리는 있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 지도자가 서로 마음이 갈라져 있었고, 밖으로는 복음을 대적하는 이들의 압박이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바울 자신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편지의 끝자락에 이르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이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전합니다. 염려할 이유가 넘치는 사람이, 염려할 이유가 넘치는 교회를 향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본문의 의미
"염려"로 번역된 말은 마음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바울은 이 염려를 없애는 방법으로 의지력이나 긍정적 생각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염려의 자리를 기도로 바꾸라고 말합니다. "아무 것도"와 "모든 일에"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염려의 범위는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고, 기도의 범위는 모든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기도를 여러 겹으로 표현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반적인 태도이고, "간구"는 구체적인 필요를 놓고 드리는 절박한 요청입니다. "구할 것"은 우리가 실제로 바라는 항목들이며, 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아직 응답을 받기 전에 감사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를 돌보신 하나님이 이번에도 선하게 행하시리라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바로 앞 절의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씀이 이 권면의 근거입니다. 주님이 곧 다시 오시며, 동시에 지금 우리 곁에 계시기에 염려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7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하는데, 이는 군대가 성을 지킨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로마 군인이 많이 살던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매우 생생한 그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염려가 마음을 파고들 때 그것을 해결하려고 더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려는 생각한다고 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밤이 깊을수록 걱정은 몸집을 키웁니다. 바울은 그 생각의 자리에 하나님을 초대하라고 말합니다. 염려가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기도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쓴 바울을 떠올려 봅니다. 그는 자신의 재판 결과를 알지 못했고, 사랑하는 교회의 갈등을 직접 풀어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편지에는 기쁨이라는 단어가 거듭 나옵니다.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고 맡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같은 길을 가르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장 7절).
염려와 기도는 같은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둘 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다른 점은 그 문제를 누구 앞에 두느냐입니다. 내 앞에 두면 염려가 되고, 하나님 앞에 두면 기도가 됩니다.
삶으로의 적용
오늘 하루, 마음에 걱정이 떠오르는 순간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 걱정을 밀어내려 하지 말고, 그대로 문장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말씀드려 보십시오. "하나님, 이 일이 걱정됩니다.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막연한 불안이 구체적인 간구로 바뀌는 순간, 마음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 끝에 감사 한 가지를 덧붙여 보십시오. 지금까지 지켜 주신 일, 오늘 주어진 작은 것들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이 염려를 밀어냅니다. 하루가 끝날 때 오늘 아뢴 것과 감사한 것을 짧게 적어 두는 것도 좋은 습관이 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는 걱정을 붙들고 혼자 씨름하는 데 익숙합니다. 밤새 생각을 굴리면서도 정작 아버지께는 말씀드리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그 습관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지금 제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들을 아버지께 아룁니다. 제 힘으로 풀 수 없는 것들을 아버지 손에 올려 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를 붙드신 것처럼 이번에도 선하게 인도하실 줄 믿고 미리 감사드립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아버지의 평강으로 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시오.
옥중에서도 기뻐하며 기도했던 바울처럼, 어떤 형편에서도 주께서 가까이 계심을 기억하며 살게 하여 주십시오. 염려가 찾아오는 자리마다 기도가 먼저 시작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