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배경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아직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 교회는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인 공동체였고,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복음의 핵심 진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5장은 그 전까지 3-4장에서 다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의 결과와 유익을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로마서 5장 6절부터 10절까지는 하나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6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하고, 7절에서는 세상의 일반적인 사랑의 한계를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의인을 위해서도 죽기 쉽지 않지만, 선한 사람을 위해서는 혹 용기를 내어 죽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교를 배경에 두고 8절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바울은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선명하게 대조합니다.
본문의 의미
8절의 핵심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라는 표현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의 어떤 자격이나 준비 상태와 무관하게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7절에서 언급된 세상의 사랑은 대상의 가치, 곧 그가 의인인지 선인인지에 따라 조건적으로 움직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대상이 죄인, 즉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존재일 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확증하셨느니라"로 번역된 단어는 단순히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뜻을 넘어,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증명하고 못 박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아니라,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최종적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랑이 인간의 무자격함 한가운데서 먼저 찾아왔다는 복음의 역설을 드러냅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종종 사랑을 조건적으로 이해합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려면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도 스스로 정돈되고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아가려는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8절은 그 순서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가 죄인 된 상태, 곧 가장 자격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시편 103편 10절은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 아니하셨으니"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행위를 계산해서 나오는 반응이 아니라, 우리의 상태와 무관하게 그분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입니다. 십자가는 이 사랑의 증거이자 최종 판결문과 같습니다.
삶으로의 적용
먼저 자신에게 이 진리를 다시 적용해 보십시오. 오늘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껴질 때, 그 감정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근거가 되지 않도록 붙잡을 말씀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정돈된 후가 아니라 죄인이었을 때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부족함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사랑의 방식을 다른 사람을 향한 태도에도 옮겨보십시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대가 변해야 사랑하겠다는 조건을 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을 기억한다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 아직 나를 상처 입힌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는 사랑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요한일서 4장 19절의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는 말씀이 삶에서 열매 맺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제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확증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제 자격이나 준비됨이 아니라 아버지의 은혜가 먼저였음을 오늘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 부족함으로 인해 흔들리는 순간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고, 제가 받은 이 조건 없는 사랑을 이웃에게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